내가만난대산

아낌없이 주는 남자 - 신극범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1.02     조회 51


교육계에 45년을 종사한 나와 46년의 역사를 가진 한 기업과의 만남.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의외로 '교육'이라는 한 단어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교육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배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배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오지랖 넓게 지나치지 못했던 우리 두 사람.

나는 이자리를 빌려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교육에 대한 꿈과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한 외야 교육자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교육의 이름으로

 

내가 교원대학교 총장을 하던 1989년쯤이었다. 아는 분의 할머니를 문상 간 자리에서 우연히 교보생명의 창립자께서 '교육박물관'을 만들고 싶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자로서 귀가 솔깃했다. 나는 교육보험을 만들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국민교육 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그를 평소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허튼 소리는 아니겠다' 싶어 일단 찾아가 뵙기로 했다. 당시 '교원대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인 양성 기관으로 새롭게 설립된 교원 교육의 중추기관이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교원대학교에 박물관을 지으면 어떨까'건의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무작정 찾아갔건만, 창립자님은 무척 반가워했다. 그리고 '공익사업으로 교육 관련 재단을 만들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이미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문화재단을 만들었고, 현재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을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 후 나는 준비위원으로 들어가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설립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계의 오랜 경험으로 까다로운 정부의 규정이나 승인은 다 해결했는데, 문제는 '목표설정'과 '사업분야'였다. 특히 창립자님은 '좀더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며 새로운 것'을 많이 구상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교육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교원 문제나 국민들의 교육에 관한 의식을 높이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창립자님은 역시 경영자인지라 "우리가 교육을 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100억 원 규모의 과실금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이니 좀더 좁혀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몇 달이 가고 결국 '환경교육'으로 낙찰이 되었다. 당시만해도 환경이란 말이 남의 나라 이야기나 배부른 소리로 드리던 시절이니 좀 의외였지만, 남들이 하지 않은 분야이고 남들보다 앞선 분야임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목표 아래 나는 초대 이사장이 되었고, 특히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환경 세미나와 강연회를 많이 열었다. 선생님들의 인식이 바뀌면 곧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니 환경교육의 텃밭을 닦는 일이었다. 게다가 어린이의 심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교육 요소로서 환경을 인식하는 계기를 심어주는 일이었다. 

요즘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 웰빙, 자연과 함께 하는 대안교육 등을 접할 때마다 창립자님의 앞선 생각이 '참으로 옳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교육 아니면 NO

 

나는 초창기의 틀만 잡아준 후 1년을 다 못 채우고 그 자리를 떠났다. 대학 총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지라 본연의 임무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인지 1992년에 교수들의 선거로 뽑힌 최초의 민주 총장으로 연임되었다. 

나는 신나고 뿌듯한 마음으로 창립자님을 찾아뵙고 학교에 기념이될 만한 것을 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창립자님께서는 "시계나 하나 사줄까요?" 하시는 것이다. 나는 "시계는 많으니까 필요없습니다" 하고는 나와버렸다. 솔직히 좀 서운하고 화가 났다. 그간의 인연도 있는데, 더구나 내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학교를 위해 어렵게 드린 간청이 아닌가.

그런데 얼마 뒤 당시 교보생명의 사장님께서 전화를 했다. 학교를 위해 1억 원을 내겠다고, 그것이 누구의 뜻인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될 일이니, 창립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주실 걸 왜 그때는 서운하게 돌려보내셨던 걸까? 아마 그는 내가 민주 총장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간의 노력을 다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쓰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주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화는 또 있다. 창립자님을 두어 번 정도 뵈었을 때의 일이다. 창립자님과 나는 거창 신가 종씨인데, 하루는 창립자님이 "종친회에서 내가 안 나온다고 불만이 있는거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였다. 우리 가문에는 대종회라는 종친회가 있는데, 권력이나 재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열성을 안 보이면 어른들께서 노여워하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화가 났다. 굳이 물질적인 것을 내놓지 않더라도 자손이 사회적으로 훌륭한 역할을 하면 그 자체가 명예이고 보람이 아닌가. 그러나 창립자님은 고민이 깊으셨는지 결국 이런 대안을 내놓으셨다. 

"돈을 1억 내겠다. 단 그것은 문중의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문화재단을 만드는 돈이다. 문중에서 공부를 하고 싶지만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교육을 위한 돈이라면 당연히 내가 내야 한다."

그리하여 신씨 일가의 장학재단으로 신장교육재단이 탄생하였다. 처음에는 60여 명의 젊은이들에게 혜택이 주어졌지만 이제는 100여명에 이르고 있다. 

 

교육이란 이 세상에 없는 두 가지를 가르치는 것

 

그렇다면 그는 교육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싶었던걸까?

그 분의 팔순 때였다. 창립자님은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 거짓말은 꼭 밝혀진다. 그걸 알면 감히 거짓말을 못하는데, 그것이 바로 정직이다"라고 하였다. 평소의 내 생활신조가 '정직'인데, 그걸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은것이다. 

 

창립자님은  또 이어서 "세상에는 거저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즉 무엇이든 공짜로 생각하면 안 되고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갚음은 자신에게 더욱 투철해야 하는 것이므로 노력과 땀방울 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립자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없는 두 가지, 즉 '거저와 비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교육철학과 같은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을 만드는 것, '정직과 성실'을 가르치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사실 그 분과 나는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가까이 모실 때도 종씨라는 것이 부담이 될까봐 서로 암묵적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 분은 열다섯 살이나 연배이심에도 항렬상의 이유로 늘 존칭에 가까운 말투로 어려워하였다. 또한 어쩌다 점심이라도 함께 할 때면 늘 가는 곳이라며 하름한 명태찌개 집으로 안내하였고, 그의 집무실엔 소파나 안락한 의자는 보이지 않고 딱딱한 의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본 그는 교육을 위해서라면 억 단위를 턱턱 내놓지만 자신의 삶은 검소하고 소탈하고 겸양하고 소박한 그런 분이었다. 교육 119였던  분! 아낌없이 주던 거목의 풍성한 잎은 그래서 더욱 그립게 푸르고, 그 그늘을 그래서 더욱 넓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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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극범 - 전)전국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대전대학교 총장, 광주대학교 총장,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이사장, 제33대 한국교육학회 회장

 

* 본 글은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1년을 기리며 2004년에 발간한 '내가만난 대산-세상엔 거저와 비밀이 없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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