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대산

광화문의 거대한 산 - 신달자
글쓴이 관리자

날짜 19.12.19     조회 54


1983년 세계보험대상을 받았을 때, 신씨 종친회에서 축하의 뜻으로 그 분의 높은 정신을 기리는 시를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개인을 대상으로는 시를 써본 적도 없고 그 분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는 나로서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종친회의 각오가 워낙 단단한데다 보내온 자료를 보니 그는 개인이 아니라 한 나라를 상징할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하룻밤을 꼬박 축시를 쓰는데 할애했다. 그 시는 그 후에 무게 있는 붓글씨의 병풍으로 꾸며져 창립자님의 사무실에 놓이게 되었고, 그것이 그 분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시를 쓴 주인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분을 사무실에서 첨음 뵈었을 때 놀랐던 것은 그가 대산(大山)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소산(小山)이라고 해야 옳을 작은 몸집이 우선 나를 실망시켰다. 그 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러나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나는 조금씩 높은 산을 오르듯 숨이 차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인간적 정상에 서 있는 그 분의 큰 산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몸에 차 있는 큰산, 그것은 너무나 한국적인 필수요건이라는 생각을 그때 나는 했었다. 몸은 작으나 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엔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두 가지 선물

 창립자님은 아직도 인간적 역량이 부족한 나에게 자신의 역사와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해 세심하게 말씀해주었다.

그 분은 이미 30대에 서울에서 가장 좋은 땅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집을 갖겠다는 다짐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단련된 정신으로 서울의 눈동자를 그려놓고 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이루어낸 사람이다.

 “내가 광화문 1번지에 내 이름을 새기고 지금부터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었지.” 

 그 첫 번째가 보험이었고, 두 번째가 서점이었다. 보험은 그런대로 필요성에 의해 쉽게 성공할 수 있었는데, 대형 서점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장애가 컸다. 그러나 창립자님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물과 같은 정신적 습기를 넣어주는 책을 널리 펴는 데 앞장섰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책을 사기 위해 가족들이 나들이를 하는 새로운 풍토가 마련되었다. 학생들이, 어린이들이, 주부가, 회사원이 서점의 책 골목에 주저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감격이었고 참으로 눈물 나는 풍경이었다. 

 책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밥을 먹고, 놀고, 다른 필수품을 쇼핑할 수 있는 다목적 서점을 만들어 우리나라 가족의 주말 문화를 바꾼 분이 바로 창립자님이다. 그 분은 “사람은 계층이 있으므로 학생들이 찾을 수 있는 곳, 일반인이 찾을 수 있는 곳, 조금은 만만한 곳, 조금은 고급풍이 도는 곳,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그 점에 매우 관심을 갖고 챙겼다.

 또한 책과 관련된 물건을 한 공간에 와서 살 수 있도록 시간 절약을 염두에 두었다. 교보문고에 왔다 가면 ‘내용 있는 유쾌한 나들이’, 그래서 ‘행복한 하루’가 될 수 있게 한다는 데 마음을 쓴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절실한 생활 품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보험으로 생활 안정을 갖게 하고, 생활을 지적 욕구로 채워 인간다운 생활을 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 창립자님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산이란 나무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높다고 해서 산이 되는 것도 아니라. 좋은 산은 영험한 정신을 길러야 하고, 무엇보다 하나가 아닌 모두를 관할할 수 있는 큰 정신을 길러야 가능한 것이다. 그 분이 살아오신 과정과 그 분의 생각들, 그것은 단순히 생각이 아니라 사상이었다. 그 분은 그 사상으로 다양한 시대적 덕목들을 주저없이 실천한 한국의 드문 거인이었다.

 

노벨 문학상도 내 책임

 대산재단을 설립할 시기에 다시 그 분을 만났다.

 “내가 노벨 문학상에 해당하는 세계보험대상을 받았으니, 이제 책을 파는 사람으로서 한국에서도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내 아호를 따 대산재단을 설립해서 우선 청소년들에게 단계적으로 문학을 공부시키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총무역할을 할 사람을 추천해봐.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작은 자동차는 내줄 수 있지만 월급은 많지 않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내가 어떠냐고 했더니, 교수는 안 된다고 하였다. 아마 일에 몰두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또한 그 분은 ‘여성의 힘’이라는 잡지를 대산재단에서 발간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보험에 종사하는 여성이 많으니 그들에게도 여성의 힘을 알리고 싶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여성의 힘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몇 번 잡지를 연구해보라고 하였는데 내가 게으른 바람에 잡지의 이름까지 짓고도 결국 잡지가 만들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분이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였는지 주변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마지막 목소리

 나는 가끔 그 분의 생신 축하 자리에 초대되었다. 교보생명 2층의 ‘라브리’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였다. 연주하는 두세 분과 몇 분의 지우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으며 음악을 듣는 것이 생신을 축하하는 최대의 만찬이었다. 어느 날엔 시를 낭송해보라고 하여서 즉석에서 축시를 낭송한 적도 있었다. 그 분의 웃는 모습이 청정했다.

 그러다 잊은 듯 오래 연락이 끊겼다 싶으면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비서의 목소리에서 그 분의 목소리로 바뀌면 나는 “회장님!” 하고 밝은 목소리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그 분은 “잘 있지요?”하고 겸허한 응답을 주었다.

 그러나 웃음이 싹 가신 어느 날의 전화 한 통. 그것이 그 분과의 마지막이었다. 마침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는 중에 비서실의 전화를 받았다. 몸이 불편하다는 소식이 오래된지라 마음으로 쾌유를 비는 그런 시간에 받은 전화였다. “내가 한번 연락한다면서 못했어. 잘하고 있지?” 뭐 그런 통화였다. “내가 지금 교보문고에 있으니까 올라가겠다”고 했지만 거절하였다. “내가 좋지 않아”하며 사람 만날 기운이 없다고 하였다.

 절망적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온몸에 퍼져왔다. 그냥 뛰어올라가고 싶었다. 나는 “더 지독한 병도 이겼으니 겁낼 것 없으세요.”라고 했지만 그 분의 목소리는 이미 한 올 연기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그것이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다.

 한 생을 개인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노력하고 그처럼 성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창립자님처럼 앞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길로 잡아 개척해나가는 분을 다시 보지 못했다.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우리 국민의 안정과 높은 정신을 위하여 늘 일을 찾고 그것을 실행하였다.

 그 분은 그저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그 생각과 사상, 그 분의 모든 업적을 다시 하나하나 국민적 정신으로 본받아야 할 그런 분이다.

 이 시대의 대산(大山) 신용호! 우리는 그 분에게서 참으로 귀한 것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실행하고 다시 그 정시늘 후손에게 이어주는 것이야말로 그 분을 읽은 우리들이 해내야 할 새 사명이 아닐까?

 

 

---------------------------------------

신달자 -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 학사, 박사, 시인, 수필가

          여류문학상 당선, '한국문화'에  '발' '처음 목소리'로 문단 데뷔. '문채' 동인,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제38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 본 글은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1년을 기리며 2004년에 발간한 '내가만난 대산-세상엔 거저와 비밀이 없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 라인 라인

  • 휴대폰
  • --
  • 사진
  • 도배방지
  • 도배방지
    목록 이전 다음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

현재페이지 1 / 1

아낌없이 주는 남자 - 신극범
교육계에 45년을 종사한 나와 46년의 역사를 가진 한 기업과의 만남.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의외로 '교육'이라는 한 단어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교육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배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배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

누구나 무한대의 가능성이 있다 -류태영
14년 전, 내가 농과대학 학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대한교육보험 회장님이 뵙기를 원한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농대 학장이 보험회사 회장을 만나서 할 애기가 뭐가 있나' 싶어 바쁘다고 거절을 하고는 끊었다. 그랬더니 "농촌에 관한 이야기를 듣...

우리의 영원한 멘토 - 이중효
요즘 많은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감옥을 제 집 드나들듯 하고 있다. 재벌기업의 분식회계(좋게 말해서 분식회계지 불법회계, 사기꾼회계라고 말해야 될 것이다), 정치자금, 비자금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불법이 세상을 뒤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면...

놋그릇처럼 길이길이 남으리 - 이봉주
나는 신용호 창립자를 딱 한 번,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보고 말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 ‘보통 ...

광화문의 거대한 산 - 신달자
1983년 세계보험대상을 받았을 때, 신씨 종친회에서 축하의 뜻으로 그 분의 높은 정신을 기리는 시를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개인을 대상으로는 시를 써본 적도 없고 그 분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는 나로서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

이 땅에 진 빚을 갚고 싶다. - 김성훈
  대산 선생께는 못다 이룬 꿈이 있다. 영정 앞에서 “누군가 이루어 줄테니 염려 말고 고이 잠드소서”라는 말을 안타깝게 달래야 했던 꿈. 나는 그 꿈을 꺼내보려 한다.     세 번째 만남    공식석상을 제외하고...

목적은 사람이다 - 강원룡
  1970년쯤의 일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기 힘든 혼란과 격동의 시기에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 대표자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박적희 대통령을 반대하던 사람이었는데, 정부에서는 그 모임을 막기 위해 나를 달래고 ...
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