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대산

누구나 무한대의 가능성이 있다 -류태영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1.02     조회 80


14년 전, 내가 농과대학 학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대한교육보험 회장님이 뵙기를 원한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농대 학장이 보험회사 회장을 만나서 할 애기가 뭐가 있나' 싶어 바쁘다고 거절을 하고는 끊었다. 그랬더니 "농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신다"는 전화가 다시 왔다. 나는 냉큼 "보험 애기인 줄 알고 안 간다고 했는데, 농촌 이야기라면 갑니다"하고는 그를 만나러 갔다. 나는 농촌 애기만 하면 숨 안 쉬고 열흘을 애기해도 끝이 안 나는 사람이니 줄줄줄 이야기가 나온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창립자님은 내 이야기를 무척 감동적으로 들었다. 그 후 창립자님과 3개월에 걸쳐 여섯 번을 만났고, 만남의 결과 농촌문화재단이 탄생하였다. 창립자님의 농촌에 대한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나 역시 다른 자리에서 수없이 이야기를 했으니, 여기서는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네 가지 분야의 대가

 

농촌문화재단을 창립할 때의 일이다. 창립자님에 대한 소개를 해야 하기에 학력과 경력을 좀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학력란에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한다'라고 쓰라고 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학력란에 쓸 수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그냥 그렇게 쓰라'고 하셨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학교에 다닌 적도 없고,  학원에 다닌 적도일일고, 서당에 다닌 적도 없고, 가정교사 둔 일도 없으며, 스스로 혼자 고으한한 분이셨다. 모두 사실이었다. 순간 내가 창립자님을 일컬어 '네가지 경지의 탑'이라 불렀던 부분이 더욱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그 첫 번째는 '음악'이다. 전라남도 출신이라 그런지 창도 할 줄 알고, 장구로 장단을 맞출 줄도 알고, 듣는 것도 무척 좋아하였다. 또한 현대 음악에는 귀가 상당히 높아서 조수미 씨 정도가 불러야 노래로 쳐주지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건 개구리 우는 걸로 여기실 정도였다. 

 

두 번째는 '미술'의 대가라는 것이다. 서양화, 동양화, 한국화 등 그림을 특히 좋아했는데, 한번은 창립자님의 친구이자 유명한 화가인 월전 선생이 나보고 "허, 그 사람 괴짜야 괴짜!" 하며 혀를 내두르셨다. 자연인즉 이랬다.

 

월전 선생의 작품전시회를 할 때였다. 한 허름한 영감이 들어서더니 쭉 둘러보고서는 어느 그림 하나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러더니 인사를 하면서 그 그림이 제일 맘에 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그림은 2-3년에 걸쳐 작가가 그린 수십 점의 그림 중에 마음과 혼을 가장 많이 쏟아부은 역작이었다. 

놀라고 있는 월전 선생에게 창립자님은 "이 그림을 그릴 때 당신은 이러이러한 생각을했지요?"라며 작가가 예술혼을 토해내게 된 발상을 알아맞히더니 그 그림을 비싼 가격에 구입했다. 월전 선생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저 영감 보통이 아니구나. 작가의 사상을 꿰뚫어보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그건 상당한 경지에 있는 미술가만이 알아내고 감동받을 수 있는 부분인데 그걸 딱 집어내다니."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4-5년 후에 창립자님이 그림을 작가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건 당신의 혼이 배어 있으니 당신이 보존해야 한다"며 선물을 한 것이다. 

 

세 번째는 '건축 디자인'이다. 광화문 교보빌딩을 설계한 시저 팰리(Ceasar Pelli)는 미국 예일 대학교 건축대학원의 원장이며 뉴욕의 80층, 90층짜리 빌딩을 14개나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다. 그런데 그가 "미스터 신은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창립자님을 칭찬했. 이유인즉 이렇다

 

교보빌딩의 설계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한국에 온 그를 창립자님은 아무 말 없이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일본에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건물들을 보여주고 잘못된 점과 잘된 점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잘못된 것은 그렇게 하지 말고 잘된 것은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그렇게 해주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오리엔테이션을 시킨 것이다. 

시저 팰리는 그려간 작품을 창립자와 의논해서 고치고 또 고쳤다. 원래 대가일수록 잔소를 싫어하는 법이지만 창립자의 말씀을 구구절절 타당성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창립자님은 요구를 들어보니 기본 디자인은 다 잡혀 있는 셈이었다. 교보빌딩이 완공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설계했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신 회장이 시키는 대로 나는 서기 역할만 했다. 건출 설계에 관한 대가는 미스터 신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보험의 대가'라는 것이다. 미국 알리바마 대학에 있는 보험의 전당에 가보면 창립자님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엔 '신갤러리'라는 개인 기념관 있다.

뉴욕의 보험대학인 존스 유니버슨의 보험의 전당에도 창립자님의 특실이 있다. 특히 세계보험협회(IIS)에서는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하여 세계 보험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보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신용호 보험학술대상'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창립자님은 보험의 역사가 시작된 영국, 꽃을 피운 미국에서도 유래가 없는 지구촌 최초의 상품을 개발. 보급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추앙에 가까운 존경을 받고 있다. 

 

교육의 대가

 

네 가지 경지에 더해 또 하나의 경지를 꼽는다면 그것은 '교육'이다. 자신이 못 배우신 탓인지, 창립자니은 한이 맺혔다고 할 만큼 가르치는 일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늘 하는 말씀이 "사람한테는 무한대의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자신감을 넣어주고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신바람 나게 해주면 엄청난 역량이 개발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신바람 나게 해주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느 '본인의 취향에 맞게 일을 디자인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고, 발령을 낼 때도 적성에 맞춰 배치하고 취향에 맞도록 조정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에 흠뻑 빠져 두세 배의 능력이 나오고 엄청난 역량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목표를 제시하고 의지를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사원들이 모였을 때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하였다. 

"여러분, 누구를 막론하고 목표를 향해 달리려는 의지가 강렬하면 역량 개발의 속도는 무지하게 빨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의지가 굳은 것은 아니므로 교육이 필요했다. 창립자님은 여러 방법을 통해 사원들을 뒷받침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중 하나가 '상호교육'이다. 내가 텐마크에서 도입한 것으로, 주제 토론을 통해 참가자들이 선생님도 되고 학생도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분야는 맘껏 풀어놓고 모르는 분야는 묻기도 하고 반론도 제기하며 활기찬 토론을 통해 배우니, 생생한 교육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 번에는 좀더 많은 공부를 하고 오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분과 가장 가깝다고 할 만큼 유난히 친해지게 된 것은 지나온 삶의 모습이 닮았다는 데 있다. 그 분은 어린 시절에 몸이 아팠고, 그러다 보니 학교를 못 다녔기에 역경 속에서 자기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나 역시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녔고, 구두닦이와 신문배달을 하며길가에서 자고 쓰레기통에서 밥을 주워 먹으며 살았다. 

하지만 병약한 시골 소년은 대기업의 총수가 되었고, 거리의 소년은 교수도 되고 박사도 되었다. 이렇게 역경을 극복한 사람이 "누구나 무한대의 가능성이 있다. 한번 도전해봐라"라고 한다면 어떤가? 한번 해볼 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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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영 - 현)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 전)대산농촌문화재단 이사장,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회장,

          도산아카데미연구원 부이사장, 건국대학교 부총장

 

* 본 글은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1년을 기리며 2004년에 발간한 '내가만난 대산-세상엔 거저와 비밀이 없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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