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대산

놋그릇처럼 길이길이 남으리 - 이봉주
글쓴이 관리자

날짜 19.12.21     조회 60


나는 신용호 창립자를 딱 한 번,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보고 말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 그리하여 ‘독특한 선각자로 불리는 사람’이 바로 그다. 

 

결사반대, 놋그릇

 

1987년의 일이다. 어느 날 교보생명의 이라라는 분이 나를 찾아왔다. 천안에 커다랗게 연수원을 지었는데, 그 곳에 필요한 식기를 놋그릇, 즉 내가 만드는 방짜유기로 만들 수 있냐는 것이었다. 물론 가능한 일이었지만 난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방짜유기’는 쇠를 녹여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서 만들기 때문에, 고가로 알려진 안성 유기보다 두 배나 비싼 그릇이기 때문이다. 몇심 개라면 모르까, 무려 3,000여개가 넘는 걸 기업 연수원에서 굳이 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이사님이 몇 번 더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찾아온 걸 모면 할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매번 딱히 결정을 못 내린 채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로 보니 이사회에서 두 가지 이류로 결사반대를 하고 있었다. 하나는 경제서이고, 다른 하나느 자주 닦고 손질해야 한다는 불편서이었다. 값싼 스테인레스에 밀려 한 해에 수저 한 벌 안 팔리던 것이 1983년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나마 문화적 가치에 의해 겨우 주문이 늘어나던 시절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었나 싶었는데 다시 이사님이 찾아와 창립자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검소한, 그래서 너무나 독특한

 

교보생명 창립자라니? 나같이 평생 대장간에서 놋그릇을 만든 사람이 그 분이 누구인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광화문의 교보빌딩 하면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 주인이라면 유명인 아닌가? 그저 ‘아이고, 나같은 작은 사람이 그런 큰 분도 만나네’하는 생각으로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검소한 그의 사무실 때문이었다. 그 정도 큰 분이면 삐까번쩍 으리으리해서 구경 한번 잘하겠다 싶었는데 보통의 사무실만도 못한 것이었다. 오히려 이제 무형문화재가 되었으니 사무실 좀 그럴듯하게 꾸며놓으라고 핀잔을 듣는 허름한 내 사무실가 거의 막상막하의 수준이었다. 

그 날 마주 앉은 창립자님은 내게 놋그릇에 관해 몇가지를 물어보았고 나는 다소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나왔다. 사무실 풍경에 충격을 받아 장신과 시선을 그 곳을 둘러보는 데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난 누가 나한테 좀 꾸미라거나 겉모습에 신경을 쓰라고 하면 단박에 그 날의 이야기를 꺼낸다. “야 겉치레가 무슨 소용이냐? 그 높다는 교보생명의 창립자님도 그렇게 검소하게 사시더라”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에게도 늘 이야기한다. “그 분을 봐라 뭐가 진짜인지 아는사람, 진정으로 높은 사람은 겉치레에 신경르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도 큰 사람이 된 것이다”라고.

 

새천년이 와도 바뀌지 않는 것

 

결국 반대를 무릅쓴 창립자님의 의지로 방짜유기로 확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이사님이 다시 찾아와 내게 오래된 낡은 놋그릇 하나를 보여주었다. 창립자님이 고향에서 가져오신 것이라며 “어렸을 적에 할머니께서 값이 비싸더라도 방짜를 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좀 만들어주십시오”라고 그의 말을 전했다. 

그렇다. 옛날에 우리나라의 그릇은 모두 유기였다. 특히 방짜유기는 그 양과 질로 집안의 형편을 가늠할 만큼 귀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시집 갈 때는 반드시 요강, 대야, 밥그릇을 해가는 것이었고, 한 번에 많이 만들 수 없는 것이기에 장만을 못했다 하면 혼인 날짜를 정하고도 긴 겨울을 넘겨 그 다음해에 결혼을 할 정도였다. 그런 놋그릇의 귀함과 정성을 기억하는 분이 계시다니.

그 주문내역을 보니 수저와 밥그릇, 1인용의 조그만 반찬그릇에 물대접과 냉면사발까지 다양했다. 놋그릇 자체는 화려하기보다 투박하지만, 그 구성만큼은 임금님 밥상 못지 않게 어느 하나 약식으로 하지 않는 풍성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총 3,200개. 나는 그 일로 ‘그 분은 정말 맞는 일다 싶으면 우물쭈물하지 않는 분이구나. 그리고 한 번 했다 하면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제대로 크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창립자님의 진가는 새천년을 맞는 그해에 더욱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이사님으로부터 ‘한번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렇게 들어선 계성원은 그 웅장한 위용도 그렇거니와 곳곳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묻어 있었다.

잠시 후 이사님과 몇몇 담당자 분들이 입을 모아 “우리 창립자님은 참 머리가 좋으시다”며 칭찬을 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반대했던 놋그릇이 딱 3년이 지나니까 밑천이 빠지더란 이야기였다. 처음엔 너무 비싸서 반대했는데, ‘경제성은 놋그릇이 최고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놋그릇을 안 했더라면 비싼 도자기를 써을 텐데, 유행이 바뀌는데다 또 자꾸 깨지다 보면 짝이 안 맞으니 계속 채워넣다가 결국엔 전부 바꿔야 했을 것이다. 또한 도자기는 깨질까봐 늘 조심스럽지만 방짜유기는 연장을 가지고 일부러 깨뜨리지 않고는 끄떡없으니, 먹는 사람이나 씻는 사람이나 그릇을 쓰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편하다. 더구나 놋그릇이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옛날처럼 밭에 나가고 들에 나가 일하느라 바빠 늘 풀로 쓱쓱 닦던 시절의 이야기고, 요즘처럼 보통 그릇 설거지하듯 해주면 굳이 어렵게 다시 닦을 필요가 없다. 

그리하여 새천년 새시대를 맞아 유니폼도 바꾸고 사무용품도 바꾸고 웬만한 건 다 새것으로 바꿀 때 안 바뀐 것이 딱 세 가지 였는데, 그 중 하나가 놋그릇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맞장구를 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만큼 앞을 내다보는 사림이기 때문에, 또 그만큼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이사님들도 갖지 못한 머리와 혜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높은 자리에 우뚝 서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비범하고 독특한 사람이구나.’

지난해는 방짜유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신이 나는 해였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생명의 그릇이라는 방짜의 우수성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 전해에 영국에 있는 어떤 학자가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장균인 ‘O-157’dl 방짜유기에 들어가면 멸균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ASSEM 회의 때 부시 대통령 등 각 나라의 대통령들이 모인 만찬에 방짜유기가 선을 보였다. 

또한 각종 다큐멘터리에서도 인체에 들어가면 비타민 결핍이 안걸리 만큼의 미네랄이 나온다는 사실과 무공해성 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여주었다. 청자, 활자 등 우리나라 오천 년의 신비 중 현대에 가장 유용하고 실용적인 세계 특허감이라는 것이다. 

이제야 밝혀진 이 엄청난 신비를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과거 오천 년을 읽고 앞으로  천 년을 내다보는 독특한 선각자만이 가지는 선험적 지혜와 현재만 보려 하는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으려는 그의 초인적인 의지 때문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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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 국가무형문화재 77호, 도예가, 납청유기 대표, 전통공예보존협회 이사장.

           전승공예 전문공장관상

 

* 본 글은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1년을 기리며 2004년에 발간한 '내가만난 대산-세상엔 거저와 비밀이 없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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