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참 만남 인터뷰-'비손'의 마음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다(우리소리 '바라지')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9.15     조회 37




우리소리 '바라지'

'비손'의 마음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다

 

정화수 앞에서 간절히 빌던 '어머니의 손'

“우리가 떠나온 곳도 ‘비손’이고, 가려고 하는 곳도 ‘비손’입니다. 우리의 음악은 늘 ‘비손’ 안에 있을 것입니다.”  

비손은 비는 손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잠에서 깨어 첫 우물을 길어다 소반 위에 올려놓고 간절히 빌던 어머니의 손이 비손이다. 자연 앞에서 미약한 인간이 신성한 무엇엔가 의지하여 소망을 이루려고 했던 태초의 간절한 몸짓. 그 소박한 의식에 장구와 북, 징과 피리 같은 악기가 더해져 리듬을 갖게 되고, 소리와 춤이 어우러지면서 의례로 발전한 것이 굿이다. 

 

우리소리 ‘바라지’의 강민수 대표(42・소리/타악)는 “우리의 출발지는 진도 씻김굿이지만, 그 보다 앞선 곳은 어머니의 비손”이라고 했다. “씻김굿은 이어주는 것입니다. 단절된 것을 이어주는 것,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저녁에 시작하여 아침에 끝나니 음과 양을 잇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떠나는 자에게는 진혼(鎭魂)을 하고, 남은 자들을 위해서는 축원(祝願)을 하면서 분리된 양자를 이어주는, 그 간절한 마음 깊은 곳에 비손이 있습니다. 아마도 모든 예술은 이 비손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진도 씻김굿에 뿌리를 둔 바라지 음악

‘바라지’는 2009년 결성된 7인조 국악그룹이다. 바라지는 뒷바라지, 옥바라지 하듯이 누군가를 알뜰히 보살피는 것을 뜻하는 우리말이기도 하고, 국악에서 판을 끌어가는 주된 소리에 덧보태지는 반주자들의 즉흥 뒷소리를 말한다. 이 그룹은 진도 씻김굿에 뿌리를 두고 독특하면서 실험적인 음악양식을 선보이고 있다. 강 대표는 무형문화재 진도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강준섭 선생의 아들이다. 아쟁을 맡고 있는 조성재씨는 진도씻김굿 무형문화재 송순단 선생의 아들이고, 트로트 가수 송가인(조은심)의 오빠다. 소리를 하는 김태영씨 역시 부친이 씻김굿 무형문화재이며, 대금을 부는 정광윤씨는 본인이 씻김굿과 삼현육각 전승자이다. 피리를 부는 이재혁씨는 황해도 강령탈춤 전승자이다. 여기에 판소리 춘향가 전승자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무대에 섰던 김율희씨, 가야금 김민영씨를 더해 일곱이다. 이처럼 멤버들이 국악 무형문화재의 2세이거나 본인이 전승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악에 관한한 유전적 DNA를 갖고 태어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한예종을 나온 강 대표를 빼고는 모두 중앙대 한국음악과 출신이다. 

▲     청춘가_우리소리 바라지

 

 

시대의 언어으로 시대의 이야기를 담다

“군 제대 후에 학교 친구들 몇몇이 모여 소리도 하고 사물놀이도 하고 그러던 차에 교수님이 이왕 하려면 제대로 팀을 만들어서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죠. 그래서 뜻있는 멤버들을 모아 ‘바라지’가 결성된 것입니다.” 조성재씨의 말이다. 그는 “이 팍팍한 시대에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하고, 슬픈 일은 서로 위로하고, 만복장수를 기원하는 음악,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지하는 음악을 해보자 그런 취지였어요. 사실 전통음악이 200~300년 전 그 시대의 음악 아닙니까? 그것을 그대로 하기 보다는 그 바탕 위에서 우리시대의 음악, 지금의 언어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국악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교수님과 우리가 의기투합한 것”이었다고 나름의 음악철학을 얘기했다. 

 

여기서 교수님은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한승석 교수를 말한다. 한교수는 국악계에서 ‘작창(作唱)의 신(神)’으로 통한다. 작창은 우리 소리를 창작하는 것으로 작곡과 편곡의 중간 정도의 개념이다. 판소리 다섯 바탕의 선율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여기에 정통하지 않고는 작창이 불가능하다. 한교수는 서울법대 출신으로 대학 시절 국악동아리에 들어간 뒤 법전을 놓고 장구채를 잡은 사람이다. 이광수・김덕수 선생에게서 비나리와 사물놀이를, 안숙선・성우향 명창에게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사사하는 등 판소리와 타악, 굿 음악까지 두루 섭렵한 싱어송라이터다. 그 역시 진도 출신이며, 어머니가 소리로 실력을 인정받은 집안의 내림 속에 있다. 예술 감독으로 ‘바라지’를 이끌고 있는 그는 단원들과 사제 간이면서 도반이고, 또 고향 선후배이기도 한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바라지’는 2011년 광주 5.18 기념공연인 ‘자스민 광주’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무대는 광주의 5월이 중동 자스민 혁명과 연대하는 메시지를 담아 남도의 씻김굿과 시나위, 타악, 무용 등으로 구성한 총체극이다. 공연은 대단한 호평을 받아 그해 8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별 5개의 최고등급을 받았다. 당시 평가기관은 씻김굿이라는 형태에 대해 “죽은 영혼들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동시에 관객과 공연자들 모두가 함께 영혼들을 달래는 듯하다”며 “영혼의 교감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정말로 진귀하고 큰 기쁨을 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바라지’는 이듬해 국악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문광부 주최 ‘천차만별 콘서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수많은 국내 공연과 중동, 미주, 유럽 등 해외공연을 거치면서 정상급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첫 음반발매 기념공연입니다. 2015년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열렸어요. 첫 곡 ‘씻김 시나위’를 연주할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망자의 넋을 씻겨 저승으로 천도하는 애처로운 곡이죠. 슬픔이 주조를 이루지만 그러다가 들썩이는 신명으로 변주되거든요. 삶은 계속되는데 슬픔이 우리를 절망 속에 가둬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비손’, ‘생!사고락’, ‘무취타’, ‘바라지 축원’ 등 음반에 실린 곡들을 연주했어요. 관객의 반응이 엄청났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저도 울고 단원들이 모두 울었어요.” 피리연주자 이재혁씨의 말이다. 

▲     청춘가_우리소리 바라지

 

전통을 살리기 위한 사회적 '뒷바라지'절실

시집이 시인들만 돌려보는 ‘전문서적’이라는 푸념처럼, 국악도 울타리 안에서 품앗이하는 ‘안방잔치’인 경우가 많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새 것들에 밀려 옛 것은 제자리를 내어주고, 우리 음악은 저물어가는 시대의 한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바라지’처럼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무형문화 유산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우리사회가 뒷바라지 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바라지’는 무형문화의 3세대 쯤 될 것 같습니다. 1964년 종묘제례악이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지 반세기가 넘었으니까요. 우리는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내려온 것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받아 그것을 전승하는 것을 천명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국악 하는 지인의 12살 아들이 재능도 있고 해서 그 길로 가고 싶어 한 것을 억지로 말렸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현실입니다. 전통을 잇는 명분도 좋지만 이것을 해서는 살아지지가 않아요. ‘바라지’ 단원들도 전부 알바도 뛰고, 다른 직업을 하면서 이것을 부업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많은 날들을 애써 준비하면 뭐합니까? 올라갈 무대가 없습니다. 어렵게 올라갔다고 칩시다. 관객이 없습니다.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면 낯익은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대개 우리 식구들이고, 품앗이 하러 온 국악 하는 사람들 빼면 진짜 관객은 얼마 없는 안방잔치입니다. 우리도 답답합니다. 우리가 공연을 잘 못해서 관심이 없는 것인지, 전승・진흥한다는 제도가 미흡하기 때문인지, 어쨌든 뭔가 부족하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강대표의 말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중에 나왔다. 속엣 말이 한번 터지니까 물 흐르듯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무대에 오르는 준비를 하기까지도 힘에 부칩니다. 무대에서 공연을 잘하는 것은 우리 몫이고요, 무대를 만드는 것은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공연을 기획하는 일, 공연을 하는 일, 관객을 모으는 일, 이렇게 3박자가 맞아야 하지요. 무형문화 1~2세대까지는 맞춤형 예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씻김굿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고 초상집에 하러 가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진도대교를 건너 세상 속으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판을 벌이면 관객이 찾아오는 구조로 바뀐 것이지요. 그런데 현실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기획과 공연과 관객, 이 3박자 중에 우리의 몫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물하는 것일 것입니다. 기획과 관객은 해당기관에서 작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만 지자체와 기업 이런 곳에서 적극 나서주지 않는다면 정말 연명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술과 대중의 거리, 선대와 후대의 간격, 전통과 현대의 단절을 어떻게 이을 것인가. 강대표는 “씻김은 이음”이라고 했다. 그는 “씻김굿이 진혼과 축원으로 떠나는 자와 남아 있는 자를 이어주듯이, 저 거리와 간격과 단절로부터의 이음이 지금 시대 우리 앞에 놓인 숙제”라며, “느리고 힘들게 가지만 비손의 마음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 팍팍한 세상에서 헐벗고 굶주린 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런 음악을 하기 위해 태어난 ‘바라지’. 우리 전통을 살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사회의 ‘뒷바라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바라지’는 첫 음반 발매 5년 만인 올해 5곡의 새 곡을 실은 음반 2집을 발매할 예정이다. 

 

▲     청춘가_우리소리 바라지

 

이 기념공연은 공연 이름도 비손이고, 곡 이름도 비손이고, 음반 이름도 비손이었다. “우리는 이 비손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나왔습니다. 그 안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세상살이 각박하더라도 제 한 몸 부귀만 쫓지 말고, 헐벗고 굶주린 이, 아프고 버려진 이, 보듬어 챙기시고, 모질고 험한 말로 상처주지 말으시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어머니가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그 염원 속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와 사서삼경과 팔만장경이 다 들어있습니다.” 강대표는 “우리는 무형문화재인 부모로부터 얼마의 재능을 타고 나와 그것을 전승하고, 시들어가는 국악을 다시 꽃피우고, 전통음악을 다시 세우고, 입신양명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세상에 나왔습니다만, 진정 우리의 선대들이 바라는 것은 항상 ‘비손’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면서 곡명도 음반명도 공연명도 비손인 것은 그런 다짐이라고 설명했다. “상봉길경(相逢吉慶) 불봉만재(不逢萬災) 만재수(滿財數) 발원(發願)…” 늘 길하고 경사스런 일만 만나고 온갖 재난은 비껴가며, 재수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이 곡의 후렴구가 특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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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바라지 : 강민수(소리/타악), 김태영(소리/타악), 조성재(아쟁), 정광윤(대금), 이재혁(피리)

o 바라지 홈페이지 : www.facebook.com/barajikorea/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는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전통문화의 창의적인 해석과 새로운 시도로 무형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젊은 전수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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