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대산

그와 함께 한 14년의 모험 - 마리오 보타
글쓴이 관리자

날짜 20.05.04     조회 153


 

1989년 첫 드로잉을 시작해 열일곱 번이나 바꾼 끝에 10년 만에 설계를 마친 강남 교보타워는 내게 무척 의미가 큰 건축물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에브리 성당, 이탈리아 로베크레 미술관, 도쿄 아트 갤러리에 이어 내가 스스로 뽑은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교보타워는 나의 애정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2002년 한국을 찾아 부산강연회에 참석했을 때는 많은 외국 작가들 중에서 특히 나에게 집중적인 질문세례가 쏟아졌는데, 그 중 대부분이 교보타워에 관한 것이었다. 

 

그 후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교보타워를 둘러보며 나는 그런 건물을 짓게 해주신 신용호 창립자님께 감사를 드렸다. 설계를 하면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침에 바라보는 그 건물의 강한 모습이었다. 그 분과 내가 원했던 대로 아주 개성이 뚜렷하고 누구에게나 강한 인상을 주는 도시의 한 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환공을 축하하러 2003년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교보타워는 이미 강남대로의 명소가 되어 있었고, 서울대 건축학과 대학원생들이 견학을 오는 등 유명한 건축물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창립자님을 만나 시작한 모험이 14년간의 대장정 끝에 성공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울에 두고 온 내 인생의 일부분, 창립자님의 철학과 혼이 구석구석 묻어 있는 교보타워의 면면을 통해 그 파란만장했던 모험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강남대로의 랜드마크

 

내가 본 서울은 오래된 유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래지향적인 도시였다. 그러나 그 자체가 삶의 모순덩어리기도 했다. 창립자님은 그런 곳에 “서울 모퉁이에 새로운 상징을 세우고 싶다”고 하였다. 

 

건축은 모든 사람이 보고 접하는 공공적인 것이기에, 도시라는 모순 속에 공동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장소를 필요로 한다. 또한 교보타워가 세워질 교차로는 단순히 차량만 붐비는 곳이 아니라 에너지, 희망, 기쁨, 고통이 합류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그 교차로에는 그 곳을 상징하는 구조물을 세워야 한다. 

 

혼란한 간판들 속에서 쉽게 길을 잃지 않고 어제의 서울을 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창립자가 이야기한 새로운 상징, 즉 강남대로의 랜드마크였다. 한국의 중심 대로 중 하나인 강남대로의 새로운 이정표, 나아가 서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 뉴욕의 엠파이어 빌딩처럼 KOREA하면 떠오르는 건축물, 그것을 세워야 했다.

 

단단하고 강한

 

어느 곳이든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똑같은 아파트와 특색 없는 수많은 건물들을 대신해 줄 이미지가 필요하다. 창립자님은 교보타워가 강남대로의 영혼이 없는 많은 건물들의 얼굴이 되길 원했다. 그 방법으로 우리는 ‘힘있고 강한’ 건물을 선택했다. 

 

창립자님은 유리 건물을 싫어하고 단단한 건축을 좋아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래서 교보타워가 주는 첫인상은 ‘단단하다’는 것이다. 그냥 단단한 게 아니라 위압적인 느낌까지 풍긴다. 특히 앞쪽으로 창문이 적어 철옹성 요새와 같다는 사람도 있다. 

또 하나의 느낌은 ‘낯설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유리 외벽의 고층 건물이 주는 ‘가벼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현대 건축의 특징이 ‘가벼움’이었고, 유리 같은 가벼운 소재가 사용되고 비대칭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좌우 대칭 구조에 벽돌 재질은 확실히 단단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더구나 주변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에게 교보타워의 유럽식 단단함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복고적이면서 정중한 교보타워는 천편일률적인 주위의 건물과는 너무나 달라 오히려 묘한 부조화를 이루며 주위를 압도한다. ‘주변과의 조화를 거부한 단단함.’ 그것이 오히려 개성이 되고 또 보고 싶고 와보고 싶은 건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교보타워엔 그 단단함만으로는 풀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것은 충돌과 대비이다. 교보타워는 두 개의 단단한 쌍둥이 빌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타워 사이는 비어 있고 투명한 유리 브리지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엄청난 빈 공간이 없다면 교보타워는 육중하기만 한 흉측한 건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투명한 유리 공간은 벽돌 외벽을 가리고 있는 도시의 모습과 햇빛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인다. 또한 두 개의 벽돌 타워는 안쪽 유리 브리지를 보호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마치 인간의 단단한 육체가 그 속의 심장을 보호하고 있는 것과 같다. 도시와 연결되는 창의 역할을 바로 이 유리 브리지가 수행하는 것이다. 

자, 이 심장으로 도시의 에너지가 들어와 건물 사방을 채워나가는 것을 상상해보라. 창립자님은 특히 이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였다. 건물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폐쇄적인 느낌과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의 개방적인 느낌이 드라마틱한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

 

건축은 삶의 일부이며 역사의 일부이며 기억의 일부이다. 특히 건축은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이 인류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립자님은 강남 교보타워의 소재로 ‘곰삭은’ 붉은색의 벽돌을 골랐다. 벽돌은 자연 중에 가장 오래된 소재이다. 그것은 흙이며 태양이고 또 흙이며 불이다. 그것은 오래된 집단 무의식 중에서 아주 원초적인 인간의 기억을 일깨워준다. 오래됐지만 새롭고 멀지만 가까우며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끊임없이 보내온 인류의 기억을 직접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되살려준다. 

 

교보타워는 오래된 건물들이 가진 미덕과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어떤 것이 공백이고 어떤 것이 채워진 것인지, 무엇이 만들어진 것이고 무엇이 자연적인 것인지, 자신이 서 잇는 공간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그 인간적인 솔직함과 전통적인 담백함이 이 건물의 의미이기도 하다. 

건축은 또한 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문화요, 역사라고 한다. 건축의 진정한 의미는 그 시대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강남의 교보타워는 ‘고품격 공간 창조’와 ‘생명과 삶의 존엄’을 상징하는 휴머니즘을 컨셉트로 하고 있다. 이것은 창립자님의 예술지향주의와 교보생명에 깔린 그의 철학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 이것이 창립자님의 교보타워에 담긴 뜻이다. 

 

그는 유별나게 건축을 사랑했다. 건축은 인간이 세상의 중심적인 존재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새로운 건물은 더 이상 옛날의 그 곳이 아니게 하고, 그로 인해 다른 역사가 열리게 한다. 또 건축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담은 그릇이고 먼 미래에 우리를 증언해줄 부산물이기에 인간을 중심에 둠으로써 비로소 인간을 다시 중심에 설 수 있게 해주는 것임을 창립자님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교보타워에 대한 창립자님의 열정과 뜻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 안의 미술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내가 골랐다. 14년간의 긴 모험의 동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지금, 누구보다 아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모든 건축물들이 그렇듯이 교보타워에 담은 그의 수많은 메시지들이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그리고 교보타워를 통해 피어난 그 불멸의 메시지는 시간을 초월해 우리의 먼 후대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되어 일깨워질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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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보타 - 1943년 스위스 출생. 스위스 루바노 까를로니 까메니쉬 건축사무소에서 설계수업, 밀라노 예술대학 건축학,

                   에꼴 폴리테크닉 객원교수, 스위스 예술연방위원회 위원, 밀라노 프레라 미술학교 명예교수.

                   * 주요건축물 : 도쿄 아트 갤러리, 이탈리아 파르테논 교회,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서울 교보 강남타워

 

 

 

* 본 글은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1년을 기리며 2004년에 발간한 '내가만난 대산-세상엔 거저와 비밀이 없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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